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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사용자의 접근성에 대한 고민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자 다른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촉이 하나둘 켜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장애'다. 사실 페미니즘을 알기 시작한지도 기껏해야 세달정도밖에 되지 않고 '장애'라는 것도 깊이 생각해봐야겠다고 시작한지 며칠이 되지 않았다. 워낙에 무지한 상태라 고민의 시작점으로 좋을 것 같아서 SeMA 비엔날레 미디어아트 서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불확실한 학교>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램프와 접근성 매핑>에 참가하게 되었다.


'램프', '접근성' 둘다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나마 '접근성'이라는 말은 웹 접근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램프'는 처음 알았다. 램프(ramp)의 사전적 정의는 '(높이가 다른 두 도로・건물 등의 사이를 연결하는) 경사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건물에 진입부에 있는 계단 혹은 턱을 넘기 위해 경사로가 필요하다. 길에 잠깐만 다녀봐도 알겠지만 경사로가 없는 곳이 훨씬 훨씬 더 많다. (물론 우리 작업실도 마찬가지ㅠㅠ) 휠체어 경사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중고나라에 매물이 꽤 많다. 사실 경사로라는 것이 거래가 되고 있는 대상인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 생각해보니 이렇게 턱과 계단이 많고 지금처럼 휠체어를 탄 사람들의 접근성에 대해 배려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다니고 싶은 곳을 다니려면 무겁지만 경사로를 들고 다닐 수 밖에 없겠다 싶다. 나도 그렇게 '배려하지 않는 사람'의 하나였기 때문에 이번에 투어를 하면서 적잖은 공포와 충격을 느끼게 되었다.







 

순서 : 퍼포먼스 - 접근성 매핑 투어 - 경험 나누기



워크숍은 3 파트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 파트는, 엘리스 셰퍼드의 공이다. 사라 헨드렌이 학생들과 제작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서 엘리스가 휠체어를 탄 채로 아름다운 몸짓을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자신이 휠체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설명한다.

두 번째 파트는, 북서울시립미술관 근처를 휠체어를 타고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 '접근성'을 고민하며 투어하는 것이다. 노들야학에서 참가한, 휠체어를 타고 계신 5분과 그외 사람들이 5개의 조를 구성하여 미술관 근처의 육교와 길, 아파트 단지를 투어한다. 중간 중간 생각할 지점이 있으면 엘리스 셰퍼드나 사라 헨드렌, 최태윤 작가님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마지막 파트는, 북서울 미술관 커뮤니티 갤러리로 다시 돌아와 두 번째 파트, 투어에서의 경험을 나누며 사라 헨드렌과 노들야학 한명희님이 각자의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모든 과정은 수화 통역, 영한 통역, 그리고 쉐어타이핑을 이용한 문자 통역이 동시에 이루어져서 보고 듣는 데 불편이 있는 사람도 무리 없이 들을 수 있게 설계되어있었다.







part1. 엘리스 셰퍼드의 퍼포먼스 



엘리스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댄서이자 활동가(activist). 엘리스의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음악가이자 중세 문학 교수였다가 장애인 댄서인 호머 아빌라(Homer Avila) 공연을 것을 계기로 춤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엘리스는 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된 경사로에서 휠체어를 탄채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한다. 퍼포먼스를 통해서 그녀는 휠체어를 사용이 어려운 신체의 일부를 대신해 신체활동을 돕는 도구로서 부가적인, 거추장스러운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소재로 신체의 일부로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춤이라는 장르에서 장애라는 것이 충분한 연습이 병행된다면 독특한 신체의 특징으로서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말한다. 확실히 엘리스의 퍼포먼스에서 휠체어라는 것이 결핍의 이미지보다는 독특한 특징으로 여겨진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엘리스 셰퍼드의 공연 장면 (이미지 출처)


퍼포먼스를 볼 때는 긴가민가 했는데, 엘리스의 공연 영상을 찾아보니 공연 중에 두 발로 서는 장면도 있어서 그녀가 장애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장애에 대해 말하고, 장애를 어떻게 인식해야하는지를 설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가 장애를 이해하고 공부하고 이에 대해 말하기까지 들였을 어마어마한 노력과 고충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실제로는 장애인이 아님을 처음에 알려주면 어땠을까'는 생각도 들었고, 곧이어 '그럴 필요가 있을까'는 질문이 뒤따라 왔다. 이에 대해 오늘 퍼포먼스를 함께 본 분들과 장애인식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이 느낀 바에 대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추후에 확인한 사항이 있어 추가한다. 엘리스는 장치에 의지하여 제한적으로 걸을 수 있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맞다고 한다.)

 






part2. 충돌하는 접근성



두 번째 파트인 '투어'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미술관 근처 길을 다니며 휠체어 사용자에게 어떤 불편사항이 있는지를 관찰하고 질문해보는 시간이었다. 투어를 한 경로는 다음과 같다. 육교 경사로를 제일 먼저 다녀오고 다시 돌아와서 미술관 옆길로 2001 아울렛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 중계무지개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와 출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총 1.3km 정도의 경로이다.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 경로의 약도가 제공되는데 각자 이 종이에다가 투어 중에 관찰한 사실들을 적도록 했다. 길이 너무 좁아서 휠체어 사용자 옆에서 바로 관찰을 하기는 힘들었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불편함들이 굉장히 많았다. 투어 중에 관찰한 사실이나, 참가자 혹은 Sara나 Alice가 질문을 던진 지점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육교

  • 램프가 너무 좁다. 램프로 올라가는 도중 비장애인이 오면 피할 곳이 마땅히 없을 정도로 좁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는 것은 비장애인이 되돌아가면 그만인데 만약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마주치게 된다면? 비키기도 어렵거니와 후진하여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 위험할 것 같다.

  •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올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 커브를 도는 지점이 너무 좁다.

  • 경사가 급한 편이다.

  • 난간의 높이가 높아 육교 너머의 경치를 보기가 힘들다.




@ 북서울 미술관 - 2001 아울렛 앞 횡단보도 두 개
  • 가는 길에 유럽식 돌바닥으로 된 곳이 있는데, 울퉁불퉁하여 바퀴가 끼고 승차감이 좋지 않다.
  • 시각장애인용 보행로가 있었는데 이또한 울퉁불퉁하여 휠체어 사용자에게는 힘든 경험이었다. 이때 Sara가 '접근성의 충돌 collision of accessibility'이라며 설명해주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과 전동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접근성이 충돌하는데, 이런 경우 어떤 대안이 있을까?
  • 차도로 내려갈 수 있게 된 경사로가 한쪽으로만 기울어진게 아니라 급한 각도로 앞으로도 옆으로도 기울어져 있어서 매우 위험해보였다.
  • 비보호 횡단보도가 있었는데,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이 쉽게 건널 수 없어보였다. 특히 밤에 엄청 위험할 것 같다. 그리고 차가 빠르게 다가왔을 때 다양한 자세로 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비장애인과 달리 휠체어 사용자는 피하는 게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 노점상에서 보도블럭에 과일을 늘어놓고 판매하고 있었는데, 도로가 너무 좁아 과일을 칠 뻔 했다.
  • 전동 휠체어는 전기 충전식이라고 하는데, 주행중 횡단보도나 육교 경사로 같은 데서 배터리가 다 되면 어떻게 될 지 아찔했다.
  • 휠체어를 탄 친구끼리 나란히 수다를 떨며 걷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중계무지개아파트 단지내
  • 휠체어에 백미러가 없고, 뒤를 돌아보기도 힘들다. 후방에서 차나 오토바이가 온다면 심한 공포감을 느낄 것 같다. 또한 청각에 불편이 있는 경우 위험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될 수 있다는 점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 경사로라고 다 접근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급한 경사로의 경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바퀴가 공회전 할뿐이다.
  • 다른 팀을 기다리느라 잠깐 정차해있었는데, 정차 위치가 배수구 위였다. 배수구를 막고 있는 철구조물이 떨어지거나 하면 위에 있던 휠체어 사용자도 위험해질까봐 아찔했다.
  • 도로 폭이 좁아 주차된 승용차들을 긁고 지나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 주행중 이물질이 끼거나 바퀴가 터졌을 때 몸을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면 너무 당황스러울 것 같다.
  •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세워놓은 구조물들 때문에 지나가기 어려웠다.
  •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정자에서 같은 눈높이로 앉을 수가 없다. 바닥이 조금이라도 파여 있다면 같은 눈높이로 수다를 떠는 게 가능했을텐데.
  • 놀이터에서 휠체어를 탄 아동이 놀 수 있는 기구가 아무 것도 없었다. Alice가 직접 철봉과 시소를 타는 것을 보여줬는데 상황을 묘사하자면 아래와 같다. 시소를 탈 때는 옆으로 고꾸라질까봐 무서웠고, 철봉에 매달릴 때는 휠체어 무게때문에 허리가 늘어날 것만 같이 보였다.



시소와 철봉에서 놀기 위해 애쓰던 Alice








part3. 투어에서 관찰한 것 공유 & Sara와 한명희씨의 발표


참가자들이 투어에서 관찰한 것들, 느꼈던 불편 사항들을 간단하게 공유하고 Sara hendren과 노들야학의 한명희씨가 활동하는 작업들을 소개해주었다.




> Sara hendren : Adaptation + Ability

Sara는 Olin College에서 Adaptation + Ability Group이라는 리서치 랩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 많이 사용하던 수동적인 이미지의 장애인 심볼을 한눈에 봤을 때 행동과 의지가 먼저 느껴지는, 역동적인 장애인 심볼이 인쇄된 반투명 스티커를 만들어 거리의 기존 장애인 심볼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Street Art 성격으로 진행되었지만 추후 공공기관에서 시행되게 하는 영향력을 끼쳤다.


사라의 프로젝트 (이미지 출처 : 사라 헨드렌 홈페이지)



사라는 장애인에게 기본적인 물리적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 외에도 감성적인 가치에 대해 고려도 해야함을 말했다. 함께 이야기 나누기, 경치 구경하기, 재밌게 놀 수 있기 등이 그런 감성적 가치에 해당한다. 사라는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접근할 때 '어떤 시설물을 만들어 줘서 해결하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적응력(Adaptation) 관점에서의 접근이 아닌 가능성과 기능성(Ability) 관점에서 접근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라는 이런 관점에서, 팔을 잃은 학생에게 사람의 팔을 재현한 인공 팔이 아닌, 새롭고 뚜렷하고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기능을 가진 팔을 만들어주곤 한다. 사라는 특정 장애에 대해 범용적으로 사용가능한 제품이 아니라 장애인 한 명 한명의 욕구를 잘 반영한 것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모듈로 사용할 수 있는 경사로도 제작했는데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과 휠체어 사용자를 모두 고려한 것이다. 이는 놀이와 접근성을 모두 고려한 것으로 사라 작업의 결을 잘 보여준다. 





> 노들야(野)학 한명희 : 장애인의 일상이 좌절의 연속이지 않게끔 투쟁하는 사람들


노들 장애인 야학은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이 초졸 이상 학력을 가지는 비율이 중증장애인이 아닌 사람의 50%에도 미치지 못함에 문제의식을 느껴 설립되었다고 한다. 2001년경에는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지하철 리프트의 추락 사건이 2건이나 있어서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과격 시위도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동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까지 관련 법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정부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시위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한명희씨가 발표한 내용 중에 "광주나 경기도를 넘어간 지방에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타고 갈 수 있는 시외버스가 단 한대도 없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고 싶고 휴게소 호도과자의 맛을 알고 싶다."고 한 내용에서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큰 불편없이 사용하던 시외버스에 장애인의 접근성을 위한 배려가 하나도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광화문역을 지나다니며 보였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도 지나다닐 때는 뭔지 몰랐는데, 설명을 듣고는 알게 되었다. 요지는 "혜택이 모욕의 댓가가 아니라 인권으로서 당연하게 보장되게끔 해야한다"는 것이다.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면접에서 얼마나 가난한지 경쟁을 해야한다는 상황과 비슷하게 보인다.)









정리하며



접근성 투어를 하면서 내가 일상적으로 누려 왔던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불편이나 좌절을 겪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좁은 땅에 인구밀도는 심각하게 높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일상적 고민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까, 어느 곳에 들어갈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보다 훨씬 더 기본적인 이동권, 생존권 등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너무 무관심하고 방관하고 있었다. 


나의 위치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 경험을 알리는 것부터 해보기로 하고 이 후기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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